Crisis Comm2009. 3. 21. 22:53
지난 금요일, 친한 기자와 함께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뭘 먹을까 강남구청역 근처를 배회하다 '전라남도 한정식'이란 간판이 걸려 있는 두 가게를 차례로 들러봤다. 한 곳은 손님이 너무 많아 대화하기 불편하고 한 곳은 손님이 너무 없어 들어가기 의심 스러웠다.

어정쩡하게 10분을 보내다 깔끔해 보이는 쌈밥집이 보이길래, '정기자, 저리 가자. 깔끔해 보이네'하며 기자의 등을 떠밀 듯이 재촉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갑작스레 잡힌 점심약속이라 마땅한 식당을 생각해 놓지 못해 마음이 급하기도 해서였다.

쌈밥 2인분과 안주만두 한 접시를 시켜놓곤 시원하게 맥주 한 병을 따 나눠 마셨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쌈밥 정식이 나와 쌈을 싸 들어 먹기 시작했다. 몇 분간을 쌈이 맛있다며 먹고 있는데 기자가 흠칫하며 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나 : 정기자, 뭐해? 쌈에 머리카락이라도 있냐?
기자 : 형님, 이거 뭐죠?
나 : 뭐? 이리 줘봐.
 
쌈을 홱 낚아채서 보니 기생충 알 같은 새 하얗게 동그란 물체들이 오밀조밀 상추에 붙어 있다. 검지를 들어 조금씩 그 부분을 밀어보니 밀려간다. 느낌이 이상하다. 주방 아줌마와 얘기하던 사장님을 불렀다.

나 : 사장님, 잠시만요.
사장 : 네, 손님.. 뭘 드릴까요?
나 : 아뇨 그게 아니고.. 여기 상추 좀 보세요. 이 안에 하얀거 보이시죠? 이게 뭐 같으세요?
사장 : (가만히 살펴보다) 아, 이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원래 상추에서 나는 거예요.(부정)
기자 : 에? 상추에서 그냥 나는 거라고요? 그게 뭔데요? 무슨 성분이 있는 물질이에요? 그냥 기생충알 같은데..
사장 : (말을 더듬으며)아..아니에요. 이거 기르다 보면 나는 뭐 그런거 있는데.. 다른 쌈도 보여드릴까요? 마찬가지에요.. (다른 쌈을 들고 와 보이며) 보세요.. 여기도 있죠? 절대 기생충알 아닙니다.(거짓)
나 : 아니.. 다른 쌈에 있다고 이게 안심할 거란 말이에요 뭐예요? 이게 뭐냐고요..? 좀 이상한데.. 기생충알 맞네.이거.
사장 : 그런 것 같진 않은데.. 어쨌든 찝찝하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흐르는 물에 다 깨끗하게 씻은건데.. 이리 줘 보세요. 제가 다시 보시는 앞에서.. 흐르는 물에 씻어다 드릴께요. 기생충알 일 수도 있겠네요(인정).
나 : (의외인데..?) 그래요?
기자 : (입맛 떨어졌다는 듯 맥주 한 모금 하며) 아니.. 됐어요. 됐습니다.
사장 : 아닙니다. 제가 씻어다 드릴께요. 손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들여오는 상추가 농약을 치지 않고 키우는 무공해다 보니 그럴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깨끗하게 씻으면 별 탈 없으니 제가 씻어다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사과/개선책).

사장이 급히 주방 앞에 있는 씽크대로 가 보는 앞에서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상추를 씻어 소반에 다시 담아왔다.

나 : 정기자, 사장님께서 이렇게 주시는데 그냥 먹자.
기자 : (마지못해) 그럽시다.
나 : 야, 이게 벌레알이면 진짜 무공해라는 거 맞는 거잖아? 안 그냐? 먹어 먹어. 사람의 위라는게 그렇게 허술하지가 않아요.
기자 : 에헤.. 별.. 그만하고 먹읍시다.

씻어 놓은 상추를 다 먹자 사장이 멀리서 지켜보다 다른 상추를 또 씻어다 준다. 그러기를 3번.. 처음엔 불편했던 마음이 사장의 진심어린 태도에 모두 누그러졌다. 사장이 끝까지 아무것도 아니라고 우겼으면 다시 오진 않았을 것을.. 한번 더 와보잔 생각을 하며 식당을 나섰다.

위기 시 기업이 저렇게 빨리 사과를 하며 액션을 취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얼마나 그들이 말하는 대로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 좋을까.

식당운영 철학이 있는건지, 사람이 좋아서인진 몰라도.. 쌈밥집 사장은 고객 둘을 잃지 않았고.. 그로 인해 더 많은 고객들을 확보할 잠재적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이 경우와 다르게 오늘, 아주 불쾌한 경험을 했다. 회사에 일이 있어 집 앞에서 좌석버스를 탔다. 지하철을 타면 1시간이 넘게 소요되지만.. 좌석버스를 타면 30분이면 가기에 주말에만 이용하는 버스다.

막히지 않은 도로를 잘 타고 가던 버스가 어느 순간 여의도 전부터 속도를 늦춰 달리기 시작했다. 앰뷸런스가 옆을 지나가는 걸로 봐서 사고가 난 듯 했다. 차가 늦게 가는 건 괜찮은데.. 문제는 차 안이 너무 덥다는 거였다. 최근 이른 봄날씨로 인해 전국적으로 기온이 상승했다는 뉴스는 봤지만.. 오늘은 특히나 날이 좀 더운 듯 했다.

나만 더운가 싶어 주변을 둘러봤더니.. 사람들 대부분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중엔 미처 봄 옷을 챙겨입지 못한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왠만하면 참고 가려고 했지만.. 버스는 더디게 움직이고 차량 안은 너무 더웠다. 거기다 내 앞에 앉은 여섯살쯤 돼 보이는 꼬마 사내 녀석이 땀에 젖어 미역을 널어 놓은 듯한 머리를 흔들며 앞좌석을 발로 차고 있었다. 실내 공기가 너무 더워 짜증이 났나 보다.

엄마처럼 보이는 사람은 성격이 소심한지.. 기사를 몇 번 흘끗 보다가 그만 두곤 앞에 서 있는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무언가 도움을 청하는 눈빛임을 직감했다.

'그래.. 나도 더운데.. 저 애는 점퍼까지 입고 오죽할까. 그나저나 애 엄마는 점퍼라도 벗기던지..'
속으로 중얼거리다 기사에게 한 마디 하려고 머리를 돌려 보니.. 눈에 열불이 확 났다. 버스기사 자신은 옆에 창문을 양쪽으로 열어 놓고 더위를 식히며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좌석버스는 창문을 열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버스기가사 그렇게 실내공기가 더운 걸 알았다면 에어콘을 틀어줘야 하는거 아닌가?

나 : 아저씨, 차 안이 덥네요. 에어콘 좀 틀어주세요.
기사 : .....(무시)
나 : 아저씨, 에어콘 좀 틀어 주세요. 안이 더워서 그래요.
기사 : 아직 에어콘 안 됩니다(거짓).
나 : 에? 아직 에어콘이 안 된다고요? 아니 그게 작동하는 시기가 따로 있나요?
기사 : .....(무시)
나 : 지금 여기 애가 더워서 힘들어 하잖아요. 다른 분들도 다 더운신 것 같은데..
기사 : 글쎄, 지금 안 된다고요. 에어콘 틀 수가 없어요(거짓).
나 : 그럼 아저씨 창문 열고 계신 게 에어콘이 작동 안되서 그러시는 거예요?
기사 : 네(거짓)
나 : (혼잣말로 들으란 듯이) 요새 버스는 에어콘도 때가 되야 작동되게 나오나.. 참 이해할 수 없네. 자기만 더워서 창문 열고 있으면서.. 뭐하는 거야.
기사 : (창문 쾅 닫는다/미봉책)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더 이상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너무 화가 났다. 다른 승객들도 대화를 듣다 열이 받았는지 서로 수근거리거나.. 인상을 쓰며 창 밖을 보고 있었다.

해당 버스회사에 따지겠다는 마음으로 버스기사 이름, 면허번호, 차량번호를 적기 위해 내리는 문을 향해 가는데.. 일부 승객들이 벌써 휴대폰 카메라로 차량 정보를 찍고 있었다.

운전석 쪽을 보니 버스기사가 룸 미러로 승객들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있다가 금새 차량 전방으로 시선을 돌린다. 2-3분 뒤에 '우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차 안이 조금 씩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에어콘 바람이었다(늦은 대응).

버스기사는 모르는 척 운전을 하고 있었다. 신사역에 도착하기 몇 분전 내리는 문 위를 보니 버스기사 사진 옆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승객들을 가족처럼 모시겠습니다. 이용에 불편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저희 버스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들을 위해서라면 간이라도 갔다 바칠듯한 태도를 보이는 모든 기업들에게 한 말씀 드립니다.

"이런 거(mantra?)써 붙이지만 말고 제발 좀 실천 합시다. 네?"

Posted by jjpd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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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네. 항상 궁금한거지만 버스 운전사분들은 왜 그렇게 자린고비인거지? 에어콘이나 히터 사용에 대해 인센티브나 혹은 내부 불이익 조항등이 있는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는 이해가 안되더라고...

    2009.03.22 12:11 [ ADDR : EDIT/ DEL : REPLY ]
    • 글쎄요.. 그게 버스회사에 얼마나 많은 비용절감을 가져다 줄진 모르지만..
      고객을 불편하게 해서 잃을 것들과 비교하면 얼마나 클까요?
      최근 저도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사기 및 충성도가 떨어진답니다. :)
      주말 잘보내십쇼~

      2009.03.22 13:08 [ ADDR : EDIT/ DEL ]
  2. 헉... 이미지를 보니 완전 실천해야 겠는데요... ㅋㅋㅋ

    2009.03.22 22:59 [ ADDR : EDIT/ DEL : REPLY ]
  3. 9700번

    그날 운행했던 기사님을 만나봤는데요, 윗분께서 예측하신대로 회사에서 주유해준 양으로 기점찍고 종점까지 돌아와야 했기에 부득이하게 그렇게 했다고 하네요,,, 죄송하다는 말씀 전해 달라고 했구요, 담부턴 넉넉히 주유하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도록 하겠답니다. 스포츠 토토나 하러 가야겠네요.ㅎㅎㅎ

    2009.03.24 15:58 [ ADDR : EDIT/ DEL : REPLY ]
    • 운행 시스템이 문제였군요. 여하튼 더웠습니다. :)

      2009.03.24 21:15 [ ADDR : EDIT/ DEL ]
  4. 아.. 버스하니까 저도 불쾌한 기억이..
    아저씨가 너무 험하게 몰아서 꽈당하고 버스 바닥에 넘어졌거든요.
    전 아예 바닥을 찍었고, 제 위로 옆에 서 있던 사람들 줄줄이 무너져있고...
    아주머니 한 분이 "아저씨 운전을 왜 이렇게 험하게 하세요?"하고 나름의 항의 섞인 목소리를 냈으나
    바로 저 버스 아저씨처럼 무응답-_-

    버스 안에는 침묵.. 침묵... 침묵.....

    택시도 그렇고, 버스도 그렇고.. 이런 불편을 어디 말할 데가 있었음 좋겠어요.
    피드백이 가야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들도 좀 달라지려고 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덧) 저 버스 안이 계속 침묵이었던 것은 아침 출근길 버스.. 지하철에서 몇 정거장 가다가 대부분이 우르르 내리는 종류의 사람들이 많았던지라, 누구라도 충분히 따질 시간 & 여유가 많지 않았기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
    넘어진 저는.. 순간 너무 놀래서 (바닥에 넘어지고 심장이 벌렁벌렁 -..-) 벙 쪄 있다가 내릴 때가 되서 금새 내렸답니다. 흑.

    2009.03.25 19:02 [ ADDR : EDIT/ DEL : REPLY ]
    • 한국사람들은 불평은 많아도 표현을 잘 안하는 것 같습니다. 버스회사에 전화를 해서 불편사항에 대해 얘기를 해도 되는데.. 그 때 당시만 불쾌한 기분을 갖고 귀찮으니까 안하는건지..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죠. 정말 한국 버스기사들은 운전 험하게 하죠. 작년에 오사카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일본 버스 운전기사들은 손님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버스를 운행하지 않더군요. 처음엔 좀 답답했지만.. 한국이랑 비교를 하니.. 배울 건 배워야 겠다는 결론으로..^^ SHIENA님의 블로그엔 재미있는 얘깃거리들이 많군요. 자주 방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9.03.26 10:37 [ ADDR : EDIT/ DEL ]
  5. 제 주변 사람들은 제가 일일이 표현하려 할 때마다 "극성스럽게 왜 그래~"라며 웃음으로 저를 진정시키려 하더라구요...ㅎㅎ 이런 문화적 특성도 기업이나 버스 기사 아저씨들이 막무가내로 고객을 대하는데 한몫 하는 것 같습니다.

    2009.03.30 21: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문화란게 국가나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연결 짓게 하는 채널이 되면서도.. 서로를 이해 못하게끔 하는 장벽이 되기도 하지.

      2009.03.30 23:19 [ ADDR : EDIT/ DEL ]
  6. 하하 완죤 흡입력있는 포스팅이네요...공감 100% 포스팅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인사이트 있는 포스팅들 열심히 RSS로 구독해 읽고 있습니다. 그럼 건강하시고, PR주제 블로거들을 정리했습니다. 트랙백 남기고 가니 참고하세요~

    2009.04.02 10: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황 과장님, 오랜만입니다. 저도 포스팅 구독 잘하고 있습니다. 좋은 insight 얻으로 자주 들르겠습니다. :)

      2009.04.02 15:51 [ ADDR : EDIT/ DEL ]
  7. 아 진지한 포스팅인데 자꾸 웃음이 나네요.
    저희 아버지의 대응 양식도 이 버스 기사분과 흡사해서요. 예를 들어 TV를 보다가 "아버지 딴 거 보면 안돼요?" "..."(무시)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의 답이 없음. 얘기를 못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말해도 같은 반응-_-) 그러다 조금 있다 슬쩍 채널을 돌려주신다는ㅎㅎ
    58년째 저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계시답니다 이젠 가족들이 다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해요^^;

    2009.04.15 16:05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런 아버님의 모습은 밉살스럽다거나 싫지 만은 않잖아요? 그런데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람이.. 암튼 생각하기 싫은 기억이었습니다. :)

      2009.04.15 17:26 [ ADDR : EDIT/ DEL ]